무협의 배경 끼적이는 이야기

*** 정치

 

>>지방행정체계

 

명조 지방관의 성급 조직에는 도-포-안 삼사(三司)를 설치하였습니다. 포(布)는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를 가리키고, 포정사(布政司)라고 약칭하였습니다. 포정사는 한 성의 민정과 재정을 주관하였고, 좌우포정사(布政使), 좌우참의(參議), 좌우참정(參政) 등을 두었습니다. 안(按)은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를 가리키는데, 안찰사(按察司)라고 약칭하였습니다. 안찰사는 한 성의 사법과 감찰을 주관하였습니다. 안찰사(按察使), 부사(副使), 첨사(僉使) 등을 두었습니다. 도(都)는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를 가리키는데, 도사(都司)로 약칭하였습니다. 도사는 위소를 관장하였습니다. 위소는 군사의 편제인데, 대체로 5,600명을 1위, 1,120명을 천호소, 112명을 백호소로 삼고, 각각 위지휘사(衛指揮使), 천호(千戶), 백호(百戶) 등의 관직을 두었습니다.

 

성급 이하는 부, 주, 현의 세 등급을 나누었는데, 행정구역이자 관서의 명칭이기도 하였습니다. 부, 주, 현에는 각각 지부, 지주, 지현을 두어 장관으로 삼았고, 또 보좌관을 두었습니다. 지부의 보좌관에는 동지(同知), 통판(通判), 추관(推官)이 있습니다. 지주의 보좌관에는 동지(同知), 판관(判官)이 있다. 지현의 보좌관에는 현승(縣丞), 주부(主簿)가 있습니다. 순검사(巡檢司)는 관문과 나루터의 요충지에 설치하였고, 순검(巡檢)과 부순검(副巡檢)을 두어 도적을 체포하고 간교한 거짓을 심문하는 책임을 졌습니다.

 

>>관과 무림은 상호 불가침

 

무협물에 자주 나오는 말이 관과 무림은 상호 불가침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나, “강호의 방파라는 것은 결국 깡패 조직인데, 경찰이 깡패 조직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아니면 “일기당천의 초인 집단이 뭐가 무서워서 양민 집단에게 간섭을 받느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몇몇 작품은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서 중원 무림은 한족의 관을 도와, 이민족의 강호 고수와 싸웁니다. 정구의 신승에서 절대고수는 황제의 목숨마저 간단히 취할 수 있는 고수입니다. 최현우의 낙향문사전에서 절대고수는 자기 무를 닦는 데 바빠서 그런 번잡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유재용의 청룡장에서 금의위와 동창은 강호 문파에 첩자를 들이고, 군을 이용해 불온한 토호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GURPS 무협에서는 그 중간 지점을 선택합니다. 무림의 고수는 초인이 아니며, 그렇다고 나라를 뒤흔든다는 우려를 사지도 않습니다. 강호의 방파는 깡패 조직의 면모를 갖고 있긴 하지만, 무당파나 소림사처럼 종교 단체거나, 남궁세가나 사천당문과 같은 호족, 아니면 거대한 이익집단의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방의 토호, 혹은 향신들은 몇 년 밖에 부임하지 않는 지방관이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세력입니다. 설령 지방관이 개혁 의지를 펼친다 해도, 관아의 실무를 맡는 서리들은 지역 토박이이고 지방 토호들과 끈끈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림이 적절히 숙이고 들어가면 관에서는 웬만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의 힘

 

하지만 무림인이 그 한계를 넘어섰을 경우, 관에서 무사를 파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라면 현의 포두가 나설 수도 있고, 크게는 성을 관리하는 제형안찰사의 속관이나 빈객이 나설 수도 있습니다. 판관 포청천에는 전조를 비롯한 여러 협객들이 개봉부 판관 포청천을 따라 사건을 해결하는 게 나옵니다. 명교나 백련교와 같이 국가 전복을 꿈꾸는 단체라면 동창이나 금의위가 나설 수도 있습니다.

 

관에 무학의 전통이 없다고 해도, 어떤 문파도 따라오지 못할 부와, 문파가 바라보지도 못할 권력이 있습니다. 관은 이러한 힘을 사용해서 여러 문파의 고수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소설 이소파한에 나오는 황하칠위가 그 예입니다.

 

*** 경제

 

GURPS 무협의 배경인 중원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사물의 값을 단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창작상의 허용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화폐단위

 

명사 식화지에 따르면 1관은 동전으로 1,000문이고 은자로 1냥이며, 4관이 황금 1냥이라 합니다. 여기서 관(貫)이란 동전 1천 닢을 꿴 한 꾸러미를 기준으로 하는 무게 단위로, 대략 3.75kg이라고 합니다. 은원보는 원나라 시대 만들어진 은괴로, 보통은 배 모양으로 생겼으며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몇 냥짜리 은괴라고 조각을 해 둡니다. 길이 15cm, 두께 3cm, 무게 1.8kg인 백은 50냥짜리 은원보가 흔했다 하며, 실제로 유물로 발굴된 적도 있습니다.

 

명나라 경제는 동전이나 지폐가 아니라 은자로 돌아갔습니다.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이라는 책에서 몇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둘째는 동전의 질이 나빠서 위조하기 쉽고, 둘째는 동전의 제도가 자주 바뀌어 혼란스러우며, 셋째는 동전을 국가 기관에서 사용하지 않으며, 넷째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폐 사용을 보조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온 나라의 은이 북경으로 빨려 들어가 사람들이 전황을 겪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따라서 GURPS 무협에서는 은원보 1개=은 50냥=동전 50,000문입니다. 국가가 보장해주는 지폐는 없지만, 개인이 경영하는 전장에서 보장해주는 어음인 전표는 여러 곳에서 쓰였습니다. 이 전표의 가치는 적기에 따라 다릅니다.

 

>>물가

 

명사에는 만력연간에 1년 세수가 200만 냥에 달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명사에는 7품 지현의 1년 녹봉이 45냥의 백은이라고 합니다. 명사 식화지에서는 은자 1냥에 쌀 2석, 대략 200kg의 쌀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청나라 시대 만들어진 소설 홍루몽에서, 은자 24냥이면 서민 한 가구가 1년은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쌀값에 미루어, 명나라 시대 은 1냥은 대략 10만~15만 원 내외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따라서 GURPS 무협에서는 은 2냥을 300$로 환산합니다.

 

*** 사회

 

여기서 다루는 몇몇 개념은 현대 중국에서 많이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체면

 

중국 사람들은 체면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초한지의 항우가 자살한 것도, 강동의 자제 8천을 잃고 혼자 돌아가서 어떤 면목으로 살아가겠냐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유교의 탓으로 돌립니다. 유교에는 내세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남길 수 있는 건 후손과 이름밖에 없습니다. 이름을 날리게 되면 육신은 죽더라도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며, 조상의 이름까지 드높일 수 있으니 대단한 효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맥

 

인맥, 혹은 인간관계를 중국어로는 꽌시(關係)라 합니다. 현대 중국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나보다, 어떠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가를 고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인맥을 통해서 법적으로는 한참 시간이 걸리는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에 편의를 봐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맥은 인정이라는 것을 서로 교환하는데, 이것은 서양의 로비스트들이 건네는 뇌물과는 다릅니다. 서양의 로비가 돈을 받으면 특정한 것을 해준다는 거래 관계라면, 동양의 인정이라는 것은 어떠한 빚을 지우고, 나중에 보답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조금씩 크기를 키우면서 지속됩니다.




>>재료

 

중국은 비단으로 유명했으나, 비단은 상류층만이 쓰거나 수출되곤 했습니다. 서민들은 마로 베를 짜서 입고, 겨울에는 칡넝쿨로 짠 갈의를 입고 겨울을 버티곤 했습니다. 그럭저럭 사는 집은 면화로 짠 면직물 옷을 입고 겨울을 지냈습니다.

 

서민들은 또한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만든 옷이나 신발을 신었습니다. 따라서 상류층이 그런 옷을 입으면 검소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 여우나 표범의 가죽은 대단히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상류층은 그 털을 드러내어 입지는 않고, 그 색에 맞춘 외투를 걸쳐서 부를 뽐냈습니다.

 

>>역사

 

춘추전국시대 이전만 해도 남자나 여자 모두 저고리로 의(), 치마로 상()을 입고 속옷으로 속바지인 고()를 입었습니다. 그 위에는 심의(深衣)라 하는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심의는 저고리가 없어서 앞섬을 뒤로 돌려 친친 감았습니다. 옷을 입을 때에는 남자나 여자 가릴 것 없이 왼쪽 앞섶으로 오른쪽 앞섶을 덮는 우임(右衽)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전국시대 들어서 호복(胡服)이 도입되었습니다. 조나라 무령왕은 기마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소매를 좁히고, 허리까지 올라오는 바지를 입으며, 목이 긴 가죽장화를 신고, 허리띠로 옷을 조였습니다. 이러한 호복은 꾸준히 중국옷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나라 대에 피풍의(披風衣)라 하는 망토 비슷한 옷이 전해졌고, 당나라 고조는 소매를 짧게 한 옷을 만들어 반비(半臂)라 하였고, 이것이 곧 배자(背子)가 되었습니다. 피백(披帛)이라 하는 여성들이 걸치는 숄도 서아시아에서 전해졌습니다. 이 피백은 명대에 귀부인이 주로 쓰는 하피(霞帔)가 되었습니다.

 

당나라 시기의 특징은 여성의 노출에 대단히 관대했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얼굴을 드러내고 말을 타기도 했었고, 반소매 옷인 반비만 입고 팔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얇은 비단인 사라(紗羅)로 옷을 만들고 속옷을 입지 않기도 했습니다.

 

송과 명대에는 이러한 호복 유행이 사그라졌습니다. 이는 이민족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습니다. 거란이나 몽골풍 의복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종류

형태

길이

옷깃

이름

웃옷

민소매/반소매

맞닿음

반비, 비갑

단의

우로 여밈

, 삼자, 수갈

장의

우로 여밈

심의, 도포, 직철

맞닿음

배자, 피풍

원형

포의

아래옷

 

, , 마면군

 

 

반비(半臂)와 비갑(比甲)은 모두 웃옷 위에 입는 조끼로, 반비는 반소매 조끼, 비갑은 민소매 조끼입니다. 앞면은 길이가 허리까지 내려오고, 뒷면은 그보다 길었습니다.

 

()는 저고리를 말합니다. 홑저고리, 민무늬 저고리 등 두께와 색상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삼자(衫子)는 한국에서는 당의라고도 하며 길이는 무릎까지 닿고 소매는 좁은 여성용 통상복입니다. 그 길이가 저고리보다 길어 무릎까지 닿습니다.

 

수갈(裋褐)은 칡넝쿨로 짠 거친 베옷을 말합니다.

 

심의(深衣)는 유학자들이 입던 겉옷으로, 둥근소매와 굽은깃을 갖추고 있으며 의와 상을 따로 마름하여 허리에서 붙여 연결한 긴 포()형의 옷입니다. 허리둘레는 밑단 둘레의 반이고 옷의 전체길이는 복사뼈에 닿을 정도입니다. 허리에는 띠를 매고 목둘레, 소맷부리와 옷단의 가장자리에는 선을 두릅니다.

 

도포(道袍)는 유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던 겉옷으로, 장삼, 즉 직철과 비슷하다 합니다. 서민들도 큰 경사가 있을 때 이 옷을 입었습니다.

 

직철(直裰)은 도사나 승려가 많이 입은 겉옷으로, 소매가 매우 넓고 허리에는 충분한 여분을 두고 큼직한 주름을 잡은 옷입니다. 윗옷인 편삼(偏衫)과 아랫도리에 입는 군자(裙子)를 합쳐 꿰맨 것이 유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랫부분은 주름이 많고 풍성하나 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름이 직철이라 된 까닭은 직철이 본래 몸의 가운데에서 상, 하를 관철한다 하므로 옷을 꿰매는 것이 위와 아래에 서로 통한다는 뜻입니다. 조선에서는 이를 장삼(長衫)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배자(褙子)는 주로 여성들이 걸치던 긴소매 외투입니다. 옷깃이 서로 마주보는 형식이며,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옵니다.

 

피풍(披風)은 무협지에서 피풍의라고 하는, 말 그대로 바람을 막는 외투입니다. 현대에는 망토 혹은 케이프로 번역됩니다. 옷깃이 서로 마주보고 긴 소매가 달렸습니다.

 

()는 바지입니다.

 

()은 치마이고, 마면군(馬面裙)은 양 옆에 주름을 잡은 치마입니다.

 

명나라 시대 여성들은 유군(襦裙)이라 하여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습니다. 저고리는 삼()이라고도 하여 그 두께와 형상에 따라 단삼(單衫), 원삼(圓衫) 등으로 불렸습니다. 치마는 저고리 위로 입었고, 그 형상은 위아래로 1자였습니다.

 

원말명초 당시에는 고려양 한복, 또는 오군(袄裙)이라 해서 한복(韓服)을 닮은 옷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것의 특징은 폭 넓은 주름치마와 치마 위로 펼쳐진 저고리 등입니다. 고려양 한복은 대도를 중심으로 유행하다가 민족주의 정서에 밀려서 사라졌습니다.

 

>>모자

 

중국의 망건은 한국의 망건과 많이 다릅니다. 먼저 그 형태가 감투, 혹은 탕건과 비슷하고 꼭대기에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상투가 나옵니다. 용도도 한국의 것과는 달리 염발(斂髮:머리를 쪽찌거나 틀어올림)과 함께 관의 용도를 겸하였다고 합니다.

 

사방평정건(四方平定巾)은 사방과 위가 모두 평평한 건입니다. 줄여서 사방건이라고 합니다. 명 태조가 양유정에게 관직을 주려고 불렀는데 그가 쓴 건이 독특하여 그 이름을 묻자, 양유정이 엉겁결에 사방평전건이라 답했다 합니다. 막 천하를 통일한 명 태조는 그 건의 명칭에 천하통일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기뻐하며, 전국에 이 건을 쓰라고 명령했다 합니다.

 

육합일통모(六合一統帽)는 여섯 조각의 천을 연결하여 만든 챙 없는 모자입니다. 사방평정건과 마찬가지로 통일과 화합을 상징하기에 널리 쓰였습니다. 그 모양이 과일 껍질을 닯았다 하여 과피모(瓜皮帽), 혹은 크기가 작다고 소모(小帽)라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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