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RPS 무협에서의 청성, 화산, 아미파 끼적이는 이야기

청성파

청성파는 사천시 청성산에 위치한 정일도 계열의 무림 방파입니다. 청성산은 오두미도의 종사인 장도릉이 등선했다는 곳으로, 오두미도와 그 뒤를 이은 천사도, 그리고 정일도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청성산에는 오두미도 시절부터 수많은 도관이 있었는데, 그것이 강호의 방파로 거듭난 것은 당 말기 검선 여동빈 시기였습니다. 검선이라 불리던 여동빈은 유해섬을 가르치고, 그 유해섬이 청성산에 머물러 천둔검법을 가르치니 비로서 무림 문파로서의 청성파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청성파는 정일도 계열의 문파로, 전진도보다 약간 느슨한 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도릉이 결혼하고 아들에게 교주인 천사 자리를 넘겼듯이, 청성파의 도사들은 혼인을 할 수 있고, 비린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따로 머리를 틀어올리지 않습니다. 청성파의 선도란 마음 공부를 통해 양신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무술을 통해 육신을 단련해 신선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육신 단련을 위한 연단술 역시 상당한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청성파는 같은 남천사도의 분파였던 모산파만큼은 아니지만, 천사도의 각종 방술 역시 보존하고 있습니다. 

청성파의 제자들은 남천사도의 종사인 육수정이 제정한 복식을 입습니다. 도사는 위아래로 노란 천을 쓴 법복을 입고, 위에는 검은색 관을 씁니다. 한 손에는 칠성검이라 하여, 칼날에 북두칠성 문양을 그린 길이 이 척을 약간 넘는 검을 듭니다. 이 검은 보이는 것을 벨 뿐만 아니라, 잡귀나 악령마저 벨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한 손에는 나무로 만든 영패를 지니는데, 이는 뇌령(雷令) 또는 오뇌패(五雷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높이는 육 촌, 폭은 삼 촌, 두께 일 촌 정도 크기로 윗부분이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정면에 '오뇌호령(五雷號令)', 뒷면에 '총소만령(總召萬靈)', 그리고 측면에는 28수의 명칭이 적혀 있는 것있습니다. 이 영패는 천지를 상징하는데, 신령을 부르고, 뇌신을 사역시켜서 마귀를 퇴치하는 신성한 법기(法器)입니다.



화산파

화산파는 섬서성 화음현에 위치한 전진도 계열의 무림 방파입니다. 북송 말기 왕중양은 여동빈과 만나 도를 깨닫고, 일곱 제자를 두어 전진도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 일곱 중 하나인 학대통은 화산에 터를 잡고 그 도를 전파하니, 이것이 화산파의 기원입니다. 화북에 공동파, 종남파, 무당파 등 다양한 전진 계열 방파가 있지만, 그 사승이 확실한 것은 화산파 뿐이라고 화산파는 주장합니다. 

화산파는 전진도 계열의 문파로, 원칙상으로는 모든 제자가 출가해야 합니다. 왕중양은 입교십오론에서 출가자는 암자에 거주해야 하고, 진리를 구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야 하며, 몸은 속세에 있어도 마음은 성스러운 경지에서 노닐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야 욕계(欲界)와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삼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산파의 제자는  입교십오론』과 불교의 『반야경』, 도교의 『도덕경』과 『청정경』, 유교의 『효경』 등을 읽으나 많이 읽기보다는 그 뜻을 깨우치려고 합니다. 전란에서 죽은 사자의 명복을 비는 재초(齋醮) 이외에, 옛 도교가 갖고 있던 부적이나 금주(禁呪) 등의 미신적인 구복신앙을 배제하고 오로지 좌선인 타좌(打坐)만을 주로 하는 엄격한 내면 수행을 강조합니다. 즉, 불로불사의 신선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면적인 수련을 의미하는 '진공(眞功)'과 외면적인 이타의 실천을 의미하는 '진행(眞行)'에 의해 궁극의 실재인 도와 합일하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다시 말해, 화산파의 제자는 혼인을 할 수 없고, 비린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며, 욕망을 절제하며 타인을 위해야 합니다. 

화산파의 제자는 상투처럼 머리를 틀어올리며, 도복과 함께 도건(道巾)이라는 두건을 씁니다. 일반 도사의 도복은 청색으로 된 도포입니다. 도포의 넓은 소맷자락에는 매화 문양을 그리는데, 그 급이 높아질수록 매화 문양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다리에는 흰색 각반을 차며, 검은 가죽신을 신습니다. 장문인이나 장로는 붉은 도복을 입습니다.


아미파

아미파는 사천성 아미산에 위치한 불교 계열의 무림 방파입니다. 아미파의 가장 큰 특징은 비구니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는 밀교라고도 불리는 금강승의 영향이 컸습니다. 금강승은 기존의 불교 교의와는 달리 여신 내지 여성 원리에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금강승은 반야(般若) 즉 지혜는 여성성으로서 영원 절대성을 지니며, 방편(方便) 수행은 남성성으로서 상대적인 활동성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이 금강승의 주요 경전인 대일경과 금강정경은 당현종 시기에 전해졌습니다. 당현종은 초기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훗날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고, 안녹산의 난 때 수도를 잃고 사천으로 피난길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대일경과 금강정경 역시 그 피난길에 함께하여 아미산에 들어왔고, 복호사의 승려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폐쇄적이었던 아미파의 세가 늘어난 것은, 당나라의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습니다. 자기 살기도 바쁜 난민들에게, 모든 여래의 진실을 알 수만 있다면 보살행을 통해 복덕을 짓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성불할 수 있다는 금강승의 가르침은 대단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허나 송이 난세를 통일하고, 선종이 크게 융성하면서, 아미파 역시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 윤리가 보다 폐쇄적으로 변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아미파는 원래 천축의 금강승에서 시작되었으나, 중국 선종과의 교류를 통해 그 특색이 많이 지워졌습니다. 남녀의 합일을 통한 쾌락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구경(究竟) 차제는 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구경 차제의 일부인 유가(瑜伽)는 무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미파는 먼저 생기(生起) 차제(次第)라 하여, 본존이 생기(生起)하는 것, 즉 자기 자신을 관상(觀想)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삼밀 수행이라 하여 입으로는 진언을 암송하고, 손으로는 다양한 수인(手印, mudrā)을 짓고, 마음으로는 불보살의 도상(圖像)을 염상(念想)합니다. 이를 각각 구밀(口密), 신밀(身密), 의밀(意密)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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