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주택 등 끼적이는 이야기

>>중국 전통 주택의 기본 구조

 

대게 남북을 축으로 하여 대칭적인 배치를 합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하는 간()을 단위로 하여 동()을 구성하며, 동의 배치로 중정을 형성합니다. 기본적으로 1동의 주택은 3간으로 구성되며, 중앙간은 넓은 방으로 가족의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이고, 양옆에는 침실(와실)과 주방으로 사용됩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가족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한 주택 안에 건물 동 수가 3~4동으로 증가합니다. 중정[院子(원자)] 안쪽에 주옥을 만들고 그 앞쪽 좌우에 동서 상방(廂房)을 두어서 3동을 배치한 것이 삼합원(三合院)이고, 중정 아래쪽에 하방을 추가해서 배치한 것이 사합원(四合院)입니다. 주택 규모가 더 커질 경우는 사합원의 배치가 뒤쪽으로 반복되어 양진식(兩進式), 다음에는 3, 4, 5 진식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화북의 사합원

 

화북의 사합원은 가장 일반적인 사합원 형태입니다. 위에서 말한 네 개의 동이 내원을 이루고, 그 남쪽 앞이 전원, 그 북쪽 뒤가 후원입니다.

 

대문은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동남쪽에 위치하며, 대문 안에는 시선을 막는 영벽(影壁)이 있어 외부 사람이 집안의 광경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전원 남쪽 건물[倒座(도좌)]에는 객방, 하인방, 창고 등이 있습니다.

 

전원에서 중앙에 있는 두 번째 문인 수화문(垂華門)을 지나면 큰 내원이 있습니다. 내원의 뒤편 중앙에 안채인 정방이 있으며, 그 좌우에는 방이 부속되어 있습니다. 정방에는 집주인이나 노장이 거처합니다. 내원 좌우측에는 형제와 자녀가 거주하는 동서 상방(廂房)이 있으며 후원 주위에는 회랑이 둘러서 있습니다.

 

후원은 여자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중정에는 꽃나무를 심었으며 분재들을 진열하여 조용하고 쾌적한 주생활의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안채의 후면에 배치된 건물은 부엌, 창고, 변소 등으로 사용됩니다.

 

>>강남의 주택

 

주택은 일반적으로 하천을 따라 가며 배치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용수와 운반에 있어서 편리할 뿐만 아니라 주택환경과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리-주택-하천이나 그 반대의 구성이 많았습니다. 운하에 면해있는 건축물은 대부분 1층을 점포나 창고·작업장으로, 그리고 그 상부인 2층을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길가에 면해있는 상점은 그 후면에 주택이 있는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점가는 양측에 2층의 건물이 있어 좁고 어두운 감이 없지 않지만, 상부 지붕이 돌출되어 뜨거운 태양이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합니다.

 

주택의 배치구성은 전면 폭이 3장 내외로 좁고, 대신 그 깊이가 몇 배에 달합니다. 이는 운하를 끼고 있어야 살기 편리하고, 대가족이 살기 위한 공간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벽과 지붕은 북쪽지방의 주택보다 가볍고 엷은 것이 사용되었습니다. 무더운 남쪽답게 출입구와 창문은 크며, 남쪽과 북쪽이 함께 넓게 열리도록 하여 환기가 잘 되게 하였습니다. 중정은 동서로 길게 만들어서 그늘지는 곳이 많게 하였으며 서쪽 햇빛을 막기 위해 동서 양측에 높은 벽을 만들었습니다.

 

 

>>황토고원의 토굴

 

산서, 섬서, 감숙, 하남 등의 황토고원 지대 주민들은 황토를 파서 집을 짓고 지냅니다. 이러한 주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천연 토벽에 가로로 토굴을 판 연애식 요동(沿崖式 窯洞)입니다. 보통 여러 개의 동굴을 연결하거나 상하로 동굴을 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절벽 바깥에 따로 집을 지어 사합원과 같은 구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갱식(地坑式) 요동입니다. 이것은 평탄한 산등성이에 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의 삼면에 요동을 짓는 것입니다. 요동을 파지 않은 남면에는 지면 위로 연결되는 계단을 만듭니다. 이러한 동굴은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의외로 쾌적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거주 생활

 

원래 후한 말까지 한족들은 앉아서 생활했으나, 위진남북조와 당, 오대십국 시기를 지나면서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입식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북부에는 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항은 실내 공간의 일부를 침대 높이만큼, 그러나 넓이는 침대보다 넓게 만들어 그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잘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항 아래에는 온돌과 비슷한 설비가 되어 있어 겨울에도 따스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항만으로는 부족하면 화로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을 피우는 데에는 예전에는 목탄을 태웠다고 하지만 명나라 대에 이르러서는 석탄이 널리 사용되었다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밤이 깊어지면 이 뜨끈한 항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식물성 기름을 이용한 등잔불을 쓰거나, 부유한 사람일 경우에는 초를 사용했습니다. 부자가 부를 과시할 때에는 초를 연료로 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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